![헌혈 중인 제임스 해리슨 [호주적십자혈액원]](https://stg-wimg.heraldcorp.com/news/cms/2025/03/04/news-p.v1.20250304.61fa2ac66a86465ba4e521165de66a81_P1.jpg)
[헤럴드경제=김보영 기자] 호주에서 1100회에 걸친 헌혈로 240만명이 넘는 아기들의 목숨을 구한 희귀 혈액 남성이 88세로 숨을 거뒀다.
3일(현지시간) 호주 7뉴스 등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헌혈한 인물로 ‘황금팔의 사나이’로 불린 제임스 해리슨(88)이 지난달 17일 뉴사우스웨일즈 센트럴 코스트의 한 요양원에서 별세했다.
해리슨은 생전 1173회에 달하는 혈장 기증으로 2005년에는 ‘가장 많은 혈장 기증’ 세계 기록을 세웠으며 이 기록은 2022년까지 유지됐다. 특히 그의 혈액에는 희귀 항체인 ‘항-D 항체(anti-D)’가 포함돼 있어 240만 명이 넘는 신생아의 생명을 구하는 데 기여했다.
![헌혈 수혜자들에게 둘러싸여 마지막 헌혈을 하고 있는 제임스 해리슨. [적십자 호주 지부 ‘라이프블러드’]](https://stg-wimg.heraldcorp.com/news/cms/2025/03/04/news-p.v1.20250304.c8ee171c438644ebb13caf1651d0938e_P1.jpg)
해리슨의 헌혈 여정은 1954년, 그가 18세가 되면서 시작됐다. 14세 때 대수술을 받으며 수혈을 받은 그는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헌혈을 결심했다고 한다. 2015년 NPR과의 인터뷰에서 해리슨은 “수술을 받은 순간부터 기증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그가 평생에 걸쳐 헌혈을 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단순한 수혈 경험 때문만은 아니었다. 헌혈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혈액에 신생아 용혈성 질환(HDFN) 치료제인 희귀 항체 ‘항-D 항체’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신생아 용혈성 질환은 산모의 적혈구가 태아의 적혈구와 맞지 않을 때 발생한다. 산모의 면역체계가 태아의 혈액 세포를 위협으로 인식해 공격하게 되며 1960년대 중반 Anti-D 치료법이 개발되기 전에는 진단받은 아기 2명 중 1명이 사망할 만큼 심각한 질환이었다.
전문가들은 해리슨이 항-D 항체를 다량 보유하게 된 이유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으나, 그가 14세 때 받은 대량 수혈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해리슨의 혈장에 포함된 항-D 항체는 HDFN 예방을 위한 약물 제조에 사용됐다. 그는 신생아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18세부터 81세까지 63년간 평균 2주에 한 번씩 꾸준히 헌혈을 이어갔다.
호주 Rh 프로그램의 코디네이터 로빈 바로우는 “해리슨은 휴가 중에도 헌혈을 놓치지 않았고, 다른 주를 방문해서라도 기증을 계속했다”고 말했다.
호주 적십자 혈액원에 따르면 호주에서는 200명이 채 되지 않는 항-D 항체 기증자가 매년 4만5000명에 달하는 산모와 아기의 생명을 살리고 있다.
해리슨의 딸은 “아버지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수많은 생명을 구한 것을 자랑스러워하셨다”면서 “늘 ‘네가 구한 생명이 결국 너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전했다.
bb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