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잠깐 쉴 공간 주기 위해

2023년 도입된 대치동 학원가 ‘스트레스 프리존’

‘7억 낭비’ 비판 있었지만 10명 중 8명 ‘만족’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인근 강남구청이 설치한 집 모양의 부스 ‘스트레스 프리존’이 설치 돼 있다. 박지영 기자.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인근 강남구청이 설치한 집 모양의 부스 ‘스트레스 프리존’이 설치 돼 있다. 박지영 기자.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영어학원 마치고 수학학원 시작하는 시간까지 30분 걸리는데, 카페는 비싸고 마땅히 놀 곳이 없어요. 학원 같이 다니는 친구들 3명이랑 잠깐 얘기하고 쉬려고요.” 서울 강남구 대치동 고등학교 3학년 정모(18) 군은 학원과 학원 틈 사이 놀 곳이 마땅찮아 ‘스트레스 프리존’을 일주일에 네다섯 번씩 찾는다고 한다.

대치역에서 은마아파트 사거리까지 학원으로 빼곡히 채워진 1.5km 구간의 이른바 ‘대치동 학원가’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시설이 있다. 테이블과 의자 등이 갖춰진 반투명의 집 모양 부스들, 일명 ‘스트레스 프리존’(프리존)이다. 4일 개강을 맞은 대치동 학원가에는 바삐 걸음을 옮기는 학생들 가운데 학원과 학원 사이 잠깐 휴식할 곳이 필요한 아이들이 같이 또 혼자서 스트레스 프리존을 찾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강남구청은 지난 2023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일대 스트레스 프리존 5개소를 설치했다.  [강남구청 제공]
강남구청은 지난 2023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일대 스트레스 프리존 5개소를 설치했다. [강남구청 제공]

프리존은 대치동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지역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주민참여 리빙랩’을 통해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대치동 학생들에게 잠깐 쉬는 공간을 주자는 취지에서 2023년 도입됐다. 대치동 학원가 일대에 총 5개소가 설치됐는데, 의자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쉴 수 있는 ‘리프레시 테라피존’ 3개소, 소리를 지르거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사운드 테라피존’ 1개소, 실내자전거를 타거나 운동을 할 수 있는 ‘피트니스 테라피존’ 1개소다.

대치동 학원가 일대엔 아이들이 쉬거나 놀 수 있는 놀이터가 거의 없다. 카페나 스터디 카페는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몇 분 쉬기 위한 목적으로 가기엔 아이들 주머니 사정에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고등학교 3학년인 김모(18) 양은 학원 이동 전 김밥을 먹기 위해 이 공간을 찾았다. 김양은 “학원 가기 전에 밥 먹으면서 남들 눈치 안보고 잠깐 쉴 수 있는 공간”이라며 “학원이 이 근처라 자주 찾는다”고 설명했다.

4일 오후 찾은 대치동 인근의 한 아파트 놀이터가 한산한 모습이다. 박지영 기자.
4일 오후 찾은 대치동 인근의 한 아파트 놀이터가 한산한 모습이다. 박지영 기자.

7살 아들과 함께 프리존을 잠시 찾은 학부모 A(42) 씨는 “아이를 데리러 오면 아이 학원 끝나는 시간까지 10분 정도 기다려야 할 때가 있는데, 카페 가긴 시간이 짧게 남아 애매할 때가 있어 종종 찾는다”며 “간단하게 아이 간식 먹이고 가기도 괜찮다”고 했다. 프리존 청소를 맡고 있는 B씨도 “방학 때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5시까지 꽉 찬다”며 “학생들 3~4명씩 모여서 수다 떨고 있을 때도 있고 게임하고 있을 때도 있다. 학부모들도 커피 한 잔 사서 쉬기도 한다”고 했다.

강남구청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일대에 설치한 ‘사운드 테라피존’. 마음껏 소리를 지르니 기자의 스트레스도 풀렸다. 박지영 기자.
강남구청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일대에 설치한 ‘사운드 테라피존’. 마음껏 소리를 지르니 기자의 스트레스도 풀렸다. 박지영 기자.

앞서 프리존 도입에 예산 약 7억을 들여 비판받기도 했지만, 사용자 만족도 조사 결과 86.4%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이용객 수는 하루 100여명을 훌쩍 넘기고 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2021년 프리존 도입을 위해 인터뷰를 했을 때 초등학생들이 영어학원 차를 기다리면서 앉아있을 곳이나 놀만한 곳이 없으니 볼라드(자동차 진입억제용 말뚝) 주변에서 놀고 있었던 게 기억난다”며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쉬지 말고 편안하게 쉬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주민 의견을 반영해 시설을 설치했다”고 했다.


g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