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서전쟁 쯤으로 여겨졌던 러·우전쟁 흐름이 오염되고 있다. 미국과 EU, 서방 간의 분열이 틈입했다. 동서 구분도 사라지고 있다. 냉전의 대척점에 있던 미·러가 손을 잡으려 한다. 그 다음 북도 거론된다.

미의 궁극적 목표는 드러내지 않아도 명확하다. 세계 유일의 강대국 지위 유지를 향한 과정은 모두 ‘선’이다. 도중의 전략적 목표에서 우방도 고려 대상이 아닌 게 됐다. 하지만 이 기조도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여기서 우리는 냉혹하다 못해 잔인한 가르침을 얻는다. 이기주의의 세계화, 이로 인한 국제기구와 협력주의의 배제다. 미의 철저한 이기적 행보는 이를 무력화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른바 각자도생, 친구도 없고 적도 없는 상태. 국제관계는 길게 보면 언제나 그랬긴 하다. 냉전의 다극화라고 봐야 할까. 일각에선 제국주의 질서의 재등장을 우려하기도 한다.

보편적 인류애를 기반으로 한 국제적 연대와 협력은 무의미해지고, 이익에 기반한 카르텔 수준의 동맹이 꾸려지고 있다. 카르텔에서 신뢰관계란 없다. 기준은 오직 이익이다. 그럼에도 하릴없이 미의 전략적 목표에서 배제돼선 안 된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전략은 별로 없다. 최우선이 내부의 단결. 그래야만 외세에 대응할 힘이 생긴다. 그런데 정치가 이를 망치고 있다.

그 다음 이익에 부합하는 세력을 찾아내 동맹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뚜렷하지가 않다. 신뢰 우선인지 이익 우선인지 결정한 뒤 손을 잡아야 한다.

강한 경제와 국방은 전략적 스탠스를 넓혀준다. 지정학상 한국은 최악의 조건을 벗어난 적이 없다. 이 지정적 저주에서 벗어날 길은 우리가 강해지는 것 외엔 달리 없다. 그런데 포퓰리즘적 유혹은 양자를 망칠 우려가 높다.

좌우도 필요 없다. 국가가 위태로우면 갈등할 자유도 없어진다. 국가 주권은 보장되지 않는다. 우크라가 스승이다.

초고령화, 저출생, 양극화, 정치적 갈등... 우리 내부의 문제만 해도 하나같이 풀기 어려운 것들이 중첩됐다. 경제가 그 사이에 질식할 듯 끼였다.

상황은 거듭해서 꼬여졌다. 이런 문제들을 안고서도 외부의 난적들과도 싸워야 한다. 방정식이 고차화될수록 풀긴 어렵지만 해답은 더 정확해진다. 국가 역량도 향상될 것이다. 통섭적 국가 리더십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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