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국익 필요땐 적과도 손잡는 외교
한국, 미국과 대화에 한중관계 활용 필요
3월중 한중일·한중 외교장관 회담 주목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정치·경제적 압박을 강화하면서 한국의 미중 사이 전략적 모호성을 둘러싼 딜레마도 커지는 모습이다. 외교가 안팎에선 우리나라가 향후 미국의 대중견제에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미국의 자국우선주의로 전세계가 ‘각자도생’ 국면으로 접어든 만큼 중국과 관계 안정화를 고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중일은 오는 22일 일본 도쿄에서 3국 외교장관회의를 개최하는 방안을 최종 조율 중이다. 자연스럽게 한중 외교장관회담도 열릴 것으로 보인다.
한중 외교장관회담은 지난해 9월 유엔총회 계기에 뉴욕에서 열린 이후 처음이다.
현재 한중관계 상황은 녹록치 않다. 한국에선 12·3 비상계엄 여파에 따른 탄핵정국 국면에서 극단적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반중정서가 확산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뒤 중국 수입 제품에 20%에 달하는 관세를 부과하는 등 중국 견제를 노골화하면서 미중 사이에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특히 지난달 뮌헨안보회의 계기 한미일 외교장관회의 성명을 통해 ‘대만의 적절한 국제기구에의 의미 있는 참여에 대한 지지’가 처음으로 표명됐다는 점도 쟁점이다.
중국은 이에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했다. 대만 문제는 중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사안인 만큼 이달 말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도 언급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처럼 달아오르는 미중갈등 속 한국이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정부에서 한중관계는 사실상 ‘셧다운’(작동중지)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소원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열흘 후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사실상 미중 균형외교 폐기를 선언했다. 교역 측면에서도 중국 수출이 크게 줄고 미국 수출이 대폭 늘어나는 등 ‘일방통행’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트럼프 재등장 이후 미국은 무역 적자를 안기는 국가라면 동맹과 우방국을 가리지 않고 관세 부과를 예고하고 있으며, 국익을 위해서라면 러시아 등 이른바 ‘적국’과도 서슴없이 손을 잡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당장 미국의 관세 화살이 자동차 등 한국의 주요 산업을 겨냥하고 있는 데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전제로 한 미국의 대중 견제 동참 압박 수위가 높아질 가능성에 힘이 실린다. 박 교수는 “중국 견제에 대해 이전보다는 더 진전된 우리의 입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보여진다”면서 “미국과 관계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미국의 압박이 커질텐데, 그렇다고 중국과의 협력하는 것도 일정 수준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물론 미국의 중국 견제에 일방적인 동참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선거개입 등 음모론을 바탕으로 한 한국 내 과도한 반중정서 확산 또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중국 견제론에 대해 “하나를 얻으려다 둘을 잃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중국 견제는 한미일 군사협력 등을 통해 이미 작동하고 있다”며 “그런 상황에서 중국 견제를 또 내세울 필요가 없다”고 했다.
최근 중국은 한국에 예전과 다른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무비자 입국 허용, K-콘텐츠 교류 뿐 아니라 올해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에 외교가에서는 한중관계를 미국과의 대화에 활용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흥호 한양대 중국문제연구소장은 “트럼프 정부의 압박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대중관계를 지금처럼 수준 없이 관리해선 안 된다”면서 “대중관계가 협상카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혜현·서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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